위대 6년 (서력기원 2026년) 제칠월 이십사일, 오랑캐 추장 습근평이 백악궁에 입조한 날 성상 위대제(트럼프)께서 국빈 만찬을 베푸셨다. 장녀 이방카와 코메스 사크라룸 라르기티오눔 (황실재정백) 베선트, 마기스테르 오피키오룸 (외사대관) 루비오 등이 입장하는 동안 수금이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한다」를 울렸으며, 성상의 연회에 그 가락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이 노래는 영절 5년 (서력기원 1973년) 중화민국 가수 진분란이 처음 내고 서력기원 1977년에 등려군이 다시 불러 중화 각지에 퍼진 사랑가이다.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한다」는 가사로 중추절 전후에도 자주 불렸고, 추장 또한 예전에 즐겨 듣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오랑캐의 입조가 중추절 직전에 겹친 까닭에 중공의 풍속을 헤아린 선곡이라는 평가가 나왔으나, 만찬장에 울린 것은 그 풍속만이 아니었다.

등려군은 중화민국 출신으로 중공도당 체제를 비판한 가인이며, 생전에 중공 강역에서 공연하지 않았고 광휘 9년 (서력기원 1989년) 천안문 유혈 진압을 공개히 규탄하였다. 중화민국 정부는 그의 노래를 대륙을 향한 반공 선전 방송에 쓰기도 하였으며, 밀수 카세트테이프로 노래가 퍼지자 중공도당은 광휘 연간에 이를 「정신적 오염」이라 규정하여 금하였다. 도당이 금하고 막았던 가락이 성상의 만찬에서 수금으로 되살아난 셈이다.

같은 연회에서 엑세르키투스 임페리알리스 (제국육군) 합창단 등이 가극 「비참자들」의 합창곡 「하루만 더」를 불렀다. 이 곡은 제1막 끝에 장발장과 코제트, 마리우스 등이 이튿날 파리 봉기에 나설 결의를 다지는 노래이며, 이어지는 「민중의 노래」는 일신 6년 (서력기원 2014년) 우산 혁명과 위대 3년 (서력기원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 등 향항의 민주화 항쟁에서 불리며 저항과 단결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중공도당은 당시 자국 음악청취망에서 관련 음원을 지우고 사회교신망의 검색어를 막았으나, 그 봉기의 메아리가 백악궁 연회에 다시 울렸다.

공교롭게도 같은 회담에서 추장은 중화민국 문제를 한층 세게 들이밀었다. 성상께 「상국이 중화민국 독립에 반대하는 올바른 입장을 견지하고 중화민국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하기를 희망한다」고 하였는바, 상국이 종전에 중화민국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혀 온 표현을 「반대한다」로 고치라는 청이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추장이 상국에 이 같은 표현 변경을 공개히 요구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하였다. 평화와 신중을 내세운 그 입은, 손님의 자리에서 주인의 말을 고치려 한 참람을 가리지 못하였다.

그날 황후 멜라니아와 팽려원은 오피키움 아르티움 에트 스크리니오룸 (문예기록원) 국립아세아미술관을 찾았으며, 화성돈 일대 희망화어학교 합창단이 중국 민요 「모리화」와 「노래와 미소」를 불렀다. 공연 도중 팽려원이 따라 부르고 손뼉을 치는 등 자리가 화기애애하였다고 한다. 「노래와 미소」는 광휘 6년 (서력기원 1986년) 국제교류 행사를 위해 만들어진 아동가요로, 호금도 집권기인 일신 원년 (서력기원 2009년) 중공 건국 육십 주년 기념 행사 등에도 쓰였다. 근래 중공 전산망에서는 경제성장이 빠르고 풍조가 상대적으로 열려 있던 호금도·온가보 집권기를 그리는 영상의 반주로 쓰이며 이른바 호온 시대 향수를 상징하는 곡처럼 소비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한편 추장의 들이댐에 맞춰 화성돈에서는 반중공 시위가 이어졌다. 아메리카연합통신과 복극사보도방송망은 같은 날 라파예트 광장 등 백악궁 근처에 티베트·위구르·향항·중화민국 관련 단체와 활동가들이 모여 시위하였으며, 그 함성이 국빈 만찬장에까지 들릴 정도였다고 전하였다. 시위대는 「향항에 자유를」 「중화민국의 자유를 지켜라」 등의 구호를 외쳤고, 사회교신망에는 추장의 얼굴을 본뜬 타격대를 주먹으로 치는 영상이 올라왔다.

추장이 금한 노래가 수금으로 울리고 봉기의 합창이 연회에 겹쳤으며, 광장의 함성이 만찬장 문턱까지 스며든 것은 우연의 나열로만 읽히지 않는다. 성상께서 친히 허하신 입조 자리에서 오랑캐 추장이 제 분수를 모르는 말을 지껄인 그 날, 백악궁의 선곡은 풍속 배려라는 말보다 먼저 도당이 지웠던 가락을 되살린 것이다.

이상, 경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