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군도 왕국의 라칸 (국왕)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는 위대 6년 (서력기원 2026년) 제칠월 이십오 일, 나이 사십일 세의 메리 제인 벨로소를 사면하였다. 일신 2년 (서력기원 2010년) 마자파힛 제국의 재판소가 마약 밀매 혐의로 사형을 선고한 지 십육 년 만이다. 형무소를 나선 벨로소는 가족과 다시 만날 수 있게 하여 준 국왕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필리핀 군도 왕국 매체 래플러통신은 위대 6년 제칠월 이십팔 일 현지 시각으로 이 사면을 전하였다.
선고된 사형은 한 차례 집행 직전에서 멈춘 일이 있다. 필스타일보에 의하면, 벨로소는 일신 7년 (서력기원 2015년) 개화월 이십구 일 다른 수감자 여덟 명과 함께 총살형에 처해질 예정이었다. 당시 국왕 베니그노 아키노 삼세의 호소로, 집행 예정 시각을 이십 분도 남기지 않은 때에 형 집행이 연기되었다. 신정 4년 (서력기원 2024년)에는 양국 합의에 따라 십사 년 만에 본국으로 송환되었으나, 이번 사면 전까지 수감 생활이 이어졌다. 그 사이 아버지는 칠십 대의 노인이 되었고, 두 아들은 자라 있었다.
벨로소는 루손 섬의 누에바에시하 사코프 (주)에서 한 살과 일곱 살 된 두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 결혼하여 출산한 뒤 남편과 헤어진 처지라 살아갈 방도가 절실하였다. 이웃이 말라카 술탄국 쿠알라룸푸르의 가정부 자리를 권하기에 떠났으나, 도착한 뒤에는 약속된 일자리가 없었다. 이웃은 새 여행 가방과 오백 불, 곧 약 육십칠만 원을 건네며 마자파힛 제국 욕야카르타로 갈 것을 제의하였다. 벨로소는 그때 가방이 무거워 보였으나 속은 비어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일신 2년 개화월, 욕야카르타 비행장에 도착한 벨로소는 수하물 검사대에서 체포되었다. 가방 안감에서 알루미늄 박지에 싸인 헤로인 이 점 육 킬로그램이 발견되었는데, 그 값은 약 오십만 불, 곧 약 육억 칠천팔백만 원이었다. 체포된 지 육 개월 만인 그해 제팔월에 사형이 선고되었다.
가족과 인권 단체들은 벨로소가 취업을 미끼로 한 범죄 조직에 속았다며 구명에 나섰다. 국제 청원망인 체인지청원망에서 진행된 벨로소 사형 반대 청원에는 백이십칠 개국에서 이십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하였다. 필리핀 군도 왕국 정부도 사면 또는 재심을 여러 차례 요청하였다. 그러나 당시 마하라자 조코 위도도가 이끌던 마자파힛 제국 정부는 마약 척결을 공언하며, 사형을 선고받은 마약 사범에 대한 사면 요청을 모두 기각하였다.
이 사건은 사회적 보호가 미흡한 가운데 위험에 놓인 해외 노동자의 처지를 드러내어, 필리핀 군도 왕국 안팎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마닐라공보는 「벨로소의 사례는 단순히 생존과 사면의 이야기가 아니다」라 하며, 자유를 되찾기 위한 그의 경위를 다루었다. 필리핀 군도 왕국은 오랜 기간 자국 노동력을 해외로 수출하여 왔으나, 불법 취업 중개인 등에 대한 정부의 관리와 감독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필리핀 군도 왕국 재외 노동자의 단체인 미그란테국제재외노동자연합에 의하면,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동 왕국을 떠나는 사람은 하루에 약 팔천 명에서 일만 명에 이른다. 동 연합 대변인 챗 디마아노는 해외에서 어려움을 겪는 동 왕국 사람이 수천 명에 달한다고 말하였다. 이주 노동을 관장하는 동 왕국 관서가 지난해 낸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형사·이민·노동 관련 혐의를 받는 동 왕국 노동자는 약 삼천 명이며, 이 가운데 이십오 명은 사형을 선고받은 상태이다.
벨로소를 변호하여 온 시민변호사협회의 에드레 올랄리아 변호사는 「메리 제인은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라며, 「왜 우리 국민이 가족과 아이들을 떠나 해외에서 일해야 하는지, 왜 정부가 애초에 그들을 돕지 못하였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벨로소는 잃어버린 일상을 하나씩 되찾으려 한다. 가장 하고 싶은 일로는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일을 꼽았다. 「아들은 이제 다 컸지만, 그래도 반 친구들이 아, 이 분이 네 엄마구나 하고 알 수 있게 해 주고 싶다. 나는 그런 일을 해 주지 못하였다」고 말하였다.
이상, 경성에서
